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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독립문 120년의 여정' 전시,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자료 등 영상 공개

이혜경 기자 | 기사입력 2017/12/2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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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에서는 12(화)일부터 ‘18.2.4(일)까지 ‘독립문 120년의 여정’ 로비전시를 개최한다. 

 

그동안 독립문의 의미는 역사적 사실과 달리 축소되고 왜곡되기도 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마련한 이번 전시를 통해 독립문 120년의 역사를 통해 건립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마련했다.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우다.

 

▲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우다  

                  독립문 사진(1888~89년경)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과의 주요 교통로인 의주로에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던 영은문이 있었다. 이는 세종 즉위년에 홍살문의 형태로 처음 세워져 중종 32(1537)년에 한 칸 규모의 대문 형태로 다시 지어 영조문(迎詔門)이라 하였으나 중국 사신에 의해 영은문(迎恩門)으로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개항 이후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 끝에, 청을 제압한 일본은 조선정부에 강압적인 개혁을 요구하였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수립된 내각은 청의 종속을 끝내는 상징적인 행위로 영은문을 철거하였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청으로부터 “조선은 자주독립국”임을 인정받고 본격적인 내정간섭을 시작하였으나 고종은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여 다시 내각을 구성하였으며 서재필의《독립신문》의 창간을 지원하였다. 이후 정동클럽의 관료들은 독립신문을 통해 조선이 독립국임을 널리 알리기 위한 독립문과 독립관, 독립공원을 세워야 함을 역설하고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이를 추진한다. 

     

…Today we rejoice in the fact that the King has decided to erect upon the ruins of the arch outside the West Gate, a new one to be entitled Independence Arch. 독립문.……This arch means independence not from China alone but from Japan from Russia and from all European powers.…

 

오늘 우리는 국왕이 서대문 밖 옛터에 독립문(Independent Arch)이라고 명명할 문을 건립할 것을 결정한 사실을 경축하는 바이다.……이 문은 다만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부터, 러시아로부터, 그리고 모든 구주열강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독립신문(영문판)』 1896.6.20.일자 「Editorial」 중 

 

▲전시회 


독립문 건립 보조금은 독립신문을 통해 모금을 하였고 보조금을 낸 사람의 명단과 액수를 신문에 낱낱이 실었다. 보조금을 낸 사람들에는 정부 관료와 왕태자(1천원) 외에도 농민층, 지식인, 학도, 군인 등 각계 각층의 백성만이 아니라 재한 외교관과 선교사 등 외국인도 있어 광범위한 민중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동안 국내에서 독립문의 처지와 국외 독립운동에서의 상징성

국내에서 독립문은 관련 기사가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받기도 하고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조선이 청의 종속에서 벗어나 독립한 것을 기리는 기념물이라는 내용으로 관광지가 되고 총독부 지정 고적(古蹟)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외 독립운동단체는 그들이 발간한 신문과 독립공채, 의연금 증서 등에서 독립문을 일제로부터의 해방, 독립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있다.

 

 광복을 맞이하고 6.25전쟁으로 상흔을 입었던 독립문은 문화재위원회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 1979년 성산대로 공사에 밀려나 원래의 자리에서 서북쪽 70m 떨어진 지금의 위치로 이전 복원되었다.

 

독립문의 규모와 축조방식, 설계자와 시공자, 독립문에 새겨진 대한제국의 상징 등은 Q&A형식으로 진행하였으며, 우표나 화폐, 삐라 등 광복 이후 독립문 도안의 활용례를 실제 유물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광복 이후 독립문에서 진행되었던 행사와 시위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독립문이 어떠한 의미로 남아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기회도 마련하였다.

 

독립문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전시 유물과 자료 선보여

전시유물에는 독립문 기공식의 기사를 담은 월간지『The Korea Repository』와 왕태자의 보조금 납부 관련 기사가 담긴 『독립신문』, 영은문과 독립문의 사진을 담은 외국인의 서적과 일제강점기의 관광엽서, 사진첩, 리플렛 등이 있다. 

 

 ※『The Korea Repository』는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의 사정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1892년 1월에 발간된 영문 월간지이다. 1895년부터는 선교사 아펜젤러와 헐버트가 이어받아 1898년 12월까지 발간하였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풍습, 종료, 언어, 외교 등 광범위한 분야를 다루었다.

 

영은문부터 근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독립문의 모습 대형영상 제공

영은문부터 근대시기의 독립문, 일제강점기의 독립문, 광복 후 초청된 서재필박사가 연설하였던 건립 52주년 기념행사, 6.25전쟁의 상흔이 남은 독립문, 1979년 해체, 이전, 복원되어 독립공원의 일부가 된 오늘날의 모습까지의 사진을 대형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재필 박사 연설     © 문화예술의전당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토․일․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seoul.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문의. 02-724-0274)

 

[이혜경 기자] bluelullu@lull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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